낮은곳 섬기는 개신교 첫 수도원공동체 1980년 5월 한국 개신교 역사에 의미 있는 움직임이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참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던 크리스천 여성들 노영순(당시 감리교 목사•82) 김정란(61) 노종숙(54)씨가 가난한자, 병든 자, 눌린 자의 친구가 되는 삶을 살기 위해 전남 무안군 삼향면 왕산리 일재 9만9000여㎡(3만여평)에 한국디아코니아자매회를 태동시킨 것이다. 이들은 먼저 폐결핵 황자 요양원에서 자기훈련을 위한 수련에 들어갔다.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마 6:24)는 성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 힘든 훈련을 받았다. ‘독신의 길’이 ‘독선의 길’이 되지 않도록 사회에 밑거름이 될 것도 다짐했다. 이런 다짐 속에서 이들은 동산을 가꾸고 모원(母園)으로서 예배실과 교육실 그리고 병실 등을 건축했다. 이렇게 모원이 자리 잡게 되자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소년소녀가장, 독거노인, 무의탁 노인,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 등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속옷까지 세탁해주면서 밤새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됐다. 이 소식은 곧 널리 알려졌다. 도와달라는 요청이 전국에서 밀려왔다. 이들은 무안에 둥지를 튼지 18년 만인 1998년 11월, 공동제의 모원과 수련 장소를 충남 천안시 병천면으로 옮겼다. 무안은 분원(分園)으로 바뀌었다. 해발 450여ｍ의 산 중턱에 6만6000여㎡(2만여평) 규모로 자리 잡은 모원인 한국디아코니아자매회에는 현재 5명의 ‘언님’들이 ‘밀알의 삶’(요 12:24)을 살고 있다. 언님이란 디아코니아 자매들을 부르는 호칭이다. 자매회는 ‘언’이라는 말에 한자 어질 인(仁)에 해당되는 뜻을 부여하고 여기에 높여 부르는 ‘님’을 붙여 자매회 리더들을 ‘언님’이라고 부른다. 점심식사를 하기 전 예배실 앞뜰에서 대화를 나누는 한국디아코니아 자매회 '언님'들 언님들의 하루 생활은 중세 수도자들의 그것을 방불케 한다. 아침 6시 묵상기도로 하루를 시작해 아침 산책과 운동, 식사와 청소, 성서통독, 학습, 정오기도회 등으로 오전 일과를 마친다. 점심 후 2시간30분 동안은 일을 한다. 노동의 신성함을 체험하고 그것을 통해 자기 성찰을 하는 이 시간은 언님들에게 ‘거룩한 예배’와 같다. 고추 오이 호박 가지 등 온갖 채소를 손수 가꾸며 잔디도 직접 깎는다. 노동이 끝나면 저녁 식사와 기도회를 가진 뒤 1시간30분 동안 하루를 성찰하는 시간을 따로 마련한다. 오후 8시 저녁 기도회부터 다음날 오전 7시20분 아침기도회까지는 절대 침묵이다. 묵언의 수련을 위해서다. 노동이나 다른 어떤 것보다 침묵의 시간이 가장 알차고도 어렵다.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 발생해도 피정(避世靜修의 준말•세상을 피해서 조용히 자신을 닦는다는 의미) 프로그램에 입교한 성도가 급히 말을 걸어와도 미소만 지을 뿐이다. 취침은 저녁 10시30분. 언님이 되기 위한 과정은 순탄치 않다. 고교를 졸업하고 세례(혹은 침례)받은 35세 이하 독신 여성이면 누구나 한번쯤 꿈 꿀 수 있지만 수원하지는 않다. 3년간 강도 높은 훈련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 입교 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소명의식이다. 입교 후 6개월~1년간 친지의 면회도차 금지된다. 3년의 기간을 통과하면 헌신 예배를 드리는데 이것이 주님과 첫 번째 약속이다. 이 예배를 마친 뒤 제복을 입는다. 그 후 언님이란 호칭이 부여된다. 언님들은 4년째 되는 해에 또다시 ‘독신으로 주님을 위해 살겠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5년째 되는 해에도, 6~7년째 되는 해에도 이 물음은 이어진다. 모두 네 번의 물음이 계속된다. 그 후에는 종신 약속을 한다. 지금 한국디아코니아자매회에는 총 5면의 언님만 남아있다. 15명이 입교 해 수련 기간을 마쳤지만 10명은 떠났다. 언님들에게도 지극히 일상적인 고민이 있다. 아름답게 건축된 예배당과 식당 그리고 숙소 일부에 금이 가 비가 새지만 수리할 돈이 없어 애태우고 있는 것이다. “욕망•소유욕에 갈등••• 지금은 평안” 27년 동안 언님 생활을 해온 한국디아코니아자매회 김정란(사진) 원장은 ‘지금 언님의 삶에 만족 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만족합니다. 하지만 갈등이 수없이 많았죠”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사명감 때문에 세상에서의 가능성을 모두 버리고 이곳에 왔지만 욕망과 소유욕 탓에 갈등이 많았다는 것이다. 역설이지만 내면의 성찰에 더 깊이 빠져들면 들수록 갈등의 골도 더욱 깊어졌다는 게 김 원장의 설명이다. “제복을 입은 뒤에도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다 보면 욕심과 욕망의 끝이 과연 어디인지를 알 수 없을 만큼 그 뿌리가 깊게 박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깨달은 것이 욕망에 대한 ‘다스림의 법칙’이었다. 부단히 반복하는 훈련과 의지로 욕망을 어느 정도 다스릴 수는 있으나 그 이상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그 이후에는 ‘성령의 힘이 아니고는 결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김 원장은 “욕망과 욕심은 버리거나 제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아무리 강한 훈련을 받고 의지를 지녔다 해도 그것에 빠질 수 있는 환경에 접하면 욕망은 또다시 치밀고 올라온다.”고 설명했다. 특히 인간의 한계 즉 불완전한 내면의 한계를 사도 바울처럼 철저히 체험하고 고백해야 한자는 게 김 원장이 강조하는 대목이다. 그는 바울의 고백을 읽어주었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2~24) 그리고 바울의 자족(빌 4:11)을 깨달은 뒤 내면의 평안을 찾았다고 김 원장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면 왜 많은 언님이 이곳을 떠나게 됐느냐’고 질문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것은 그분들에게 물어보세요.” =================================================== 디아코니아(diakonia)란 헬라어로서 섬김을 뜻한다. 구체적으로 병을 치유하거나 분열과 갈등을 화해시키고 상처를 꿰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섬김은 궁극적으로는 영•육간의 건강을 회복시켜 준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디아코니아 운동은 1836년 독일 프리드리체 프리드너 목사가 라인강변 카이저스베르트 지방에서 처음으로 설립, 가난한 주민과 병든 자를 돕기 시작한 데서부터 그 역사를 찾을 수 있다. 그 후 1861년 27개 단체가 모여 독일 카이저스베르트에서 제1차 디아코니아 총회를 개최했고 이 총회는 3년마다 열렸다. 이어 1947년 세계 디아코니아연맹이 조직됐고 이 연맹의 총회는 4년마다 열리고 있다. 한국디아코니아자매회 는 1982년 카이저스베르트 총회에서 99번째로 가입했다. 그리고 세계 디아코니아연맹에는 1983년 총회에서 67번째로 가입했다. ==============================================